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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2022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I 리뷰_ 음악춘추2022_05월호 2022-04-26 248

현대음악과 은밀한 즐거움

 

 

현대음악이란 무엇일까? 대체로는 서양고전음악의 전통을 이어받은 동시대 실험적 음악 경향을 이 말로 일컫는다. 이런 입장을 받아들이자니 그 의미를 담기에 현대음악이라는 용어는 너무 광범위하다. ‘현대음악이라는 용어에서 현대’(現代)를 문자 그대로 지금 시대로 이해하면, 현대음악이라는 말 자체는 동시대의 모든 음악을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것이 마땅해 보이기 때문이다. 현대20세기 초 서유럽에서 나타난 예술사조 중 하나인 모더니즘(modernism)’의 번역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떨까? 이 문제는 더 복잡하다. ‘모던이라는 용어 자체가 가진 광범위하면서도 불분명한 지점도 문제가 될 뿐만 아니라, 20세기 이후 지금까지 나타나는 서유럽의 실험 음악 경향은 모더니즘이라는 범주를 넘어 아방가르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세분화 된다. 요컨대 현대음악현대지금 시대로 이해하면 이 용어를 너무 폭넓게 사용하게 된다는 점이, ‘모더니즘의 번역으로 해석할 경우 그 음악적 경향을 포괄적으로 담지 못한다는 점이 석연치 않다.


이런 용어상의 문제가 있지만 이 글에서는 편의상 현대음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약속한다고 할 때, 어쨌건 현대음악을 생각하면 짐짓 떠오르는 인상은 실험적 음악이다. 작곡가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기법과 주법, 음색, 음향, 형식을 실험하기 때문이다. 현대음악이 난해하다고들 하는 것은 이렇듯 익숙하지 않은 소리와 해체적 형식에서 비롯된다. 그렇지만 현대음악은 단순히 실험적 음악과 같은, 하나의 경향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현대음악에 보편적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다양성이다. 바로 이 점에서 현대음악이 대체 무엇인가 하는 혼란은 더욱 복잡해진다. 이런 물음을 다시 한 번 안겨준 것이 바로 지난 323일 수요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린 ‘2022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1’ 무대였다.

                 

‘2022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1’에서는 남인성의 Insects in the river for Clarinet, Violin, Cello, Percussion and Piano, 백은숙의 베이스플루트 독주를 위한 환상곡, 강훈의 현악4중주를 위한 오래된 그림자, 엄세현의 베이스클라리넷과 바이올린을 위한 화풍(和風), 유호정의 바이올린, 클라리넷, 피아노를 위한 그녀의 조각들, 정재은의 Guilty Pleasure for Violin, Viola, Cello, and Piano까지 모두 여섯 작품이 연주되었다.


정재은의 Guilty Pleasure는 어렸을 적 잊지 못할 일탈의 순간을 되새긴다. 바쁘지만 반복적으로 돌아가는 일상을 그리는 듯한 규칙적인 반음계적 패시지, 그리고 그 사이를 끼어드는 3화음, 7화음, 계류음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음악적 일탈, 도입부와 달리 잦은 변박과 폭넓은 다이내믹으로 훨씬 역동적인 음악이 되어 회귀하는 재현부의 반음계적 패시지. 이러한 일련의 음악적 과정은 일상 속 은밀한 일탈이 만들어내는 즐거움이 얼마나 삶을 풍요롭게 하는지를, 결국 그 사소한 기억들이 지금의 작곡가 정재은을 있게 했음을 음악적으로 그려낸다


유호정의 그녀의 조각들은 무너져 내리는 삶의 한 가운데에서 자기 자신을 찾아나간 영화 속 주인공에 공명해 자신의 현재를 돌이켜본다. 이런 주제가 때로는 피아노 반주 위에서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의 선율을 주고받으면서, 또 때로는 세 악기가 수직화음으로 리듬적 텍스처를 만들어가면서 진행된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들 작품에는 현대적 사운드와는 거리가 먼, 노래하는 선율과 화음적 요소들을 통해 서정적이거나 경쾌하거나 한 음악적 감각에 청중을 불러들인다.


2022 파안생명나무 작곡가 상을 수상한 남인성의 Insects in the rive는 강가에 곤충이 모여드는 모습을 배음렬을 사용해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타악기로 묘사한다. 이 음악이 있는 그대로의 자연 현상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려 한다면, 엄세현의 화풍(和風)은 마음을 표현하려는 수단으로써 자연을 바라본다. 현재의 고난과 역경을 뜻하는 겨울을 그려낸 1악장 동빙한설(凍氷寒雪)’은 베이스 클라리넷의 바람소리, 바이올린의 하모닉스와 바르톡 피치카토가 냉혹한 겨울을 음향적으로 그려내고, 우리 모두가 기다리는 따뜻한 봄, 2악장 화풍난양(和風暖陽)’에서는 가야금 사운드를 상기시키는 바이올린의 활기찬 피치카토 패시지가 신선한 분위기 전환을 이룬다. 이 두 작품이 각자의 방식으로 자연 현상을 음악에 새기려 한다면, 강훈의 오래된 그림자는 시를 음악적으로 읽어낸다. 이 곡은 박문경의 시 오래된 그림자에서 시작한다. 시에는 암묵적으로만 암시되어 있는 빛의 이미지가 음악에는 여린 고음 하모닉스로 나타나면서 빛과 그림자라는 시각적 이미지가 음향적으로 표현된다.


한편 백은숙의 베이스플루트 독주를 위한 환상곡은 앞의 다섯 작품들과 달리 외부 대상, 혹은 마음을 음악에 새겨내려는 의지에서 자유롭다. 이 곡은 악기가 가진 소리 가능성을 확장해보려는 실험적 작품의 일종이다. 이 작품에서는 바람 소리(air sound), 키클릭(key click), 입소리, 플러터 텅(flutter tongue), 겹음과 같은 베이스플루트의 여러 주법들이 각 섹션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진다. 이 악기의 매력을 다각도로 보여주려는 듯, 특수주법을 중심으로 한 소음이 주를 이루는 앞의 네 섹션과 달리 마지막 다섯 번째 섹션에서는 서정적인 선율이 베이스플루트의 중후한 음색으로 울리며 전체 음악이 종결된다.

이렇듯 이날 연주된 여섯 작품은 노래하는 선율과 반주, 화음적 텍스처들로 전통적 음향을 상기시키는 음악부터 악기의 다양한 특수주법으로 그 악기가 가진 소리 범위를 확장해 보려는 실험적 작품까지, 음악의 주제뿐만 아니라 기법적, 양식적 측면 모두에서 무척 다양한 양상을 보였다.


작곡가들은 늘 새로움을 추구한다. 그러나 작곡가마다 그 새로움을 만들어 가는 방법은 다르다. 이를테면 재료 자체는 새롭지만 전통적 형식을 추구하는 음악도 있고, 전통적 재료를 사용해 음향적으로는 익숙하지만 그 재료들이 담긴 형식은 완전히 해체적일 수도 있다. 서양고전음악의 시간이 축적되어 온 만큼 음악의 재료도 쌓여왔다. 그 시간만큼의 재료들이 현대음악 작곡가들에게는 자양분이다. 새로운 재료뿐만 아니라 전통적인 재료 역시 현대음악의 중요한 음악적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작곡가는 개인의 문제의식, 혹은 표현하려는 바를 음악에 담아 이야기 한다. 물론 새로움 자체가 목적인 경향이 현대음악의 중요한 흐름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새로운 재료로 만드는 새로운 이야기 방식은 낯설고 생소한 경험을 제안한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성은 현대음악의 일면이지 전부가 아니다. 현대음악의 낯선 소리가 어색해서 이 음악을 듣는 경험을 미뤄왔다면 이참에 마음과 귀를 열어보자. 예상하지 못한 은밀한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음악학자 · 박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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